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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록

2014. 03. 03 연아

<이제야 울음을 배우는구나> : 백기완

 

버들가지 물이 오르듯 부드러운
네 몸사위를 볼 적마다
춤꾼은 원래 자기 장단을
타고난다는 말이
퍼뜩퍼뜩 들곤 했었는데
으뜸을 잃어버리고도
웃는 너는 썼구나
예술은 등급으로 매기는 게 아니라구
……
오늘의 이 썩어문드러진 문명을
강타해버린 너 연아야
……
얼음보다 더 미끄러운 이 현실에서
마냥 으뜸 겨루기에 내몰리는 우리들은
이제야 너의 그 미학에서
한바탕 커단 울음을 배우는구나

 

 

 

백기완 선생도 처음엔 울컥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진흙탕 같은 세상에서 환하게 피어난 한송이 연꽃을 보고 마침내 함박웃음을 터트렸을 것이다.

'tears' 눈물은 꽉 막힌 가슴이 찢어졌을 때 그 틈새로 흘러나오는 정화의 샘물이다.

그래서 철자가 같을지도 모른다.

수 많은 사람이 김연아에게 찬사를 보냈지만, 나는 선생의 시에서 시대의 아픔을 읽었다.

'소트니코바의 금메달은 자신보다 간절함이 더했기 때문'이라는 연아.

'자기가 서고 싶은 곳에 남을 세우고, 자기가  도달하고자 하는 곳에 남이 도달하기를 바라라'는 공자의 말씀과 어찌 그리 똑같은가?

연아는 이미 성인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편파 판정에 전 세계가 들끓고 있음에도 연아는 소크라테스였다.

'부정을 저지르는 것보다 희생자가 되어 이를 감내하는 편이 낫다.'

17년 동안 매달려 온 스케이팅이 수만권의 책보다 낫다는 걸 온몸으로 깨닫고 있었다.

금메달을 위해 소트니코바가 'I scream.' 비명을 질러댔다면, 연아는 너무나 달콤하고 부드러운 'Ice-cream' 이었다.
새핸 Imagine으로 시작하자는 나의 생각과 연아의 갈라쇼가 마지막으로 겹쳐졌을 때 나는 또 한번 울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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