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입장에서 보면 난 영락없는 수구 반동.
텃밭 너머까지 청렴결백을 주장하며 진보를 꿈꾸는 그들에게 난 무자비한 압제자.
시골에 내려올 때마다 문명의 반동과 자연의 진보와의 치열한 싸움은
매번 나의 판정승으로 끝나지만 지금 나의 체력은 눈에 띄게 고갈되고 있다.
고조, 증조, 조부, 아버님에 이어 나까지 대대 손손 150년 이상을 이어온 세력다툼은 아직까진 그런대로 팽팽한 균형이다.
하지만 이 싸움은 내가 마지막이 될 것이고,
언젠간 텃밭을 넘어 앞마당까지 그들이 꿈꿔왔던 청렴결백한 세상이 될 것이다.
내가 쓰는 전술은 단순하다.
텃밭 밑으로 은밀하게 침투하는 뿌리는 삽으로 잘라내고,
텃밭 위로 낮은포복하는 몸체는 톱으로 저지한다.
이번 대나무의 저항은 만만찮았다.
톱날을 반쯤 집어 넣자 쫘악!
기합을 넣으며 자신의 몸을 수직으로 쪼갠다.
쏟아낸 탄성 에너지는 상상초월.
나의 안면을 겨냥한 그의 펀치는 정확했고 일격에 나는 정신줄 놓았다.
이번 구정연휴는 대나무의 완벽한 KO승 이었다.
오른쪽 팔목의 통증.
턱과 얼굴의 상처를 안고 귀경길에 오른다.
막히지만 않는다면 5시 20분 도착.
어김없이 우리의 월요일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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